2009년 12월 10일
겨울 시
황동규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
1
내 그처럼 아껴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던 어린 나무들이 얼어 쓰러졌을 때 나는 그들을 뽑으러 나갔노라. 그날 하늘에선 갑자기 눈이 그쳐 머리 위론 이상히 희고 환한 구름들이 달려가고, 갑자기 오는 망설임, 허나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은 목, 오 들을 이 없는 고백. 나는 갔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 어린 나무들의 자리로.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내 젊음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노라. 나직히 나직히 아직 취하지 않은 술집에서 불러내는 소리를.
날 부르는 자여, 어지러운 꿈마다 희부연한 빛 속에서 만나는 자여, 나와 씨름할 때가 되었는가. 네 나를 꼭 이겨야겠거든 신호를 하여다오. 눈물 담긴 얼굴을 보여다오. 내 조용히 쓰러져주마.
2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잘 걸을 수 없는 날
나는 너를 부르리.
그리고 닫힌 문 밖에
오래 너를 세워두리.
희부연한 어둠 속에 너의 머리 속에
소리 없이 바람은 불고
문이 열리면
칼로 불을 베는 사내를 보게 해주리.
타는 불 머리의 많은 막막함
흩어진 머리칼 아래 무심한 얼굴
혼자 있는 사나이의 청춘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뒤를 보려무나
그 사이에 나는 웃으리, 금 간 얼음장에 희부연한 빛으로.
그물 속의 불빛 그물 속의 불빛
나는 너를 보리.
3
나무들이 요란히 흔들리는 가운데 겨운 햇빛은 떨어지며 너를 이끌어들인다, 얼은 들판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나에게로. 잘 왔다 친구여, 내 알려줄 것이 있다. 저 캄캄해 오는 들판을 바라보라. 들판을 바라보는 그대로 너를 나에게 오게 하는 법을 배웠느니라.
이제 무엇을 말하겠는가. 혹은 다시 보겠는가. 네 허전히 보낸 나날의 표정 없는 얼굴을. 네 그처럼 처음을 사랑했던 꿈들을.
보여라, 살고 싶은 얼굴을. 보아라, 어지러운 꿈의 마지막을. 내려서라, 들판으로, 저 바람 받는 지평으로.
<어떤 개인 날>
未明에
아무래도 나는 무엇엔가 얽매여 살 것 같으다
친구여, 찬물 속으로 부르는 기다림에 끌리며
어둠 속에 말없이 눈을 뜨며.
밤새 눈 속에 부는 바람
언 창가에 서서히 새이는 밤
훤한 미명, 외면한 얼굴
내 언제나 버려두는 자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어둠 속에 바라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처럼 이끌림은 무엇인가.
새이는 미명
얼은 창가에 외면한 얼굴 안에
외로움, 이는 하나의 물음,
침몰 속에 우는 배의 침몰
아무래도 나는 무엇엔가 얽매여 살 것 같으다.
저녁 무렵
누가 나의 집을 가까이한다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으리
닫은 문에 눈 그친 저녁 햇빛과
문 밖에 긴 나무 하나 서 있을 뿐.
그리하여 내 가만히 문을 열면은
멀리 가는 친구의 등을 보게 되리.
그러면 내 손을 흔들며 木質의 웃음을 웃고
나무 켜는 소리 나무 켜는 소리를 가슴에 받게 되리.
나무들이 날리는 눈을 쓰며 걸어가는 친구여
나는 요새 눕기보다 쓰러지는 법을 배웠다.
薄明의 풍경
눈 멎은 길 위에 떨어지는 저녁 해, 문 닫은 집들 사이에 내 나타난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살고 깨닫고 그리고 남몰래 웃을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곤 텅 비인 마음이 올 거냐. 텅 비어 아무 데고 이끌리지 않을 거냐 우는 山河, 울지 않는 사나이, 이 또한 무연한 고백이 아닐 거야. 개인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스산한 바람소리 뻘밭을 기어다니는 바다의 소리, 내 홀로 서서 그 소리를 듣는다. 내 진실로 생을 사랑했던가, 아닐 건가.
<갈매기>
나랫소리 이는 곳에 노랫소리처럼 들려오던 것
그것은 水深에서 수심에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거리
나도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웃음을 울고 싶었다
흐르는 구름처럼 그런 울음을
그것은 수심에서 수심에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거리.
<새벽 빛>
1
집 앞에 반쯤 눈 덮인 들판
반쯤 눈뜬 하늘
혼자 사는 일은
끊임없는 갈증, 방향 없는 돌아옴.
창이 어두워올 때
내 앞의 촛불보다 먼저 잠들었을 때
창 가까이 별이 돌아가고
나의 손 펼친 잠이여
病者의 光學
나의 잠 속에는
잘 아는 길을 헤매다니는
먼 우레소리 들린다.
무엇엔가 가까이하는 자는
자기 눈물의 맛을 보는가.
닫힌 창에 뻗쳐진 손을
찾게 되는가.
병자의 광학, 나의 어두운 눈에 외로운 두 손에
반쯤 눈 덮인 들판
반쯤 눈뜬 하늘.
2
들 한가운데는
얼어붙은 연못이 있어
내 갔었네, 해질 무렵이면
내 몸 속 잔뼈에
희미한 불들을 감추고.
새 하나 날지 않는 공간
빈 나무 하나 비쳐 있을 뿐
아픔에 살이 익어 더 어둡지 않는 우리들이여
나의 방황은 거기에 있네
새 하나 날지 않는 공간에
저녁 무렵에.
3
갑자기 놀라 잠이 깰 때면
복잡한 소리를 내며 도는 지구의 소리.
때로 꿈속에도 들었다
세상의 무딘 고동소리
저음으로 답하는 사람들의 소리.
또 돌산을 오르는 나.
진실로 같은 틀로 나고 끝남을 알게 된다면,
다시 나고 싶지 않으리라
이끼풀까지도,
다시 살고 싶지 않으리라
몸 속을 훤히 밝히는
저 새벽 빛을
이 돌산의 고요함을
돌산과의 아무 소리 없는 이 상봉을.
광대같이 홀로 흐느끼는 나의 걸울
나의 죽음이여, 내가 자리를 때로 벗어나
어느덧 낯선 사내같이 웃을지라도
미소 담긴 얼굴로 답하여 다오.
그 미소 속에 더 탈 수 없는 것도 타고
이미 익은 살도 다시 어두워지리.
아프리, 저 새벽 빛.
그러면 시는 어떤가 이번 겨울에는 황동규를 읽을 것이다. 초기 시부터.
# by | 2009/12/10 01:58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