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혁 연주회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임동혁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음악당 콘서트홀 3층에 들어서자 아찔했다. 경사가 무척 가팔랐다. 맨 뒷줄에 앉아서도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지러웠다. 흔들다리에서 이성을 만나면 더 좋아하기 쉽다는 식이 될 것 같았다.

첫 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흐르자 눈이 뜨거워졌다. 음악은 지나간다. 지극히 아름다웠다. 라벨을 귀기울여 듣는 건 임동혁의 연주가 처음이었다. <밤의 가스파르>는 뛰어났다. 라벨은 아로와주 브르트랑의 산문시집 <밤의 가스파르>를 읽고 그중 세 편의 시를 골라 피아노곡으로 작곡했다고 한다. 첫곡 '온딘'의 뜻이 물이 요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들으니 물 같은 선율이 요정처럼 흐른다고 느껴졌다. 세번째 곡 '스카르보'는 아주 화려하고 고상했다. 임동혁의 연주에서 음들은 생생하고 힘은 잘못 쓰이는 일이 없었다. 라벨이나 라벨의 연주자가 어떻게 뛰어난 건가? 'How can we know the dancer from the dance?' 라벨을 앞으로 더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 뒤의 프로그램은 기대했던 쇼팽의 마주르카였다. 분명히 17번 중 두번째 곡인 e단조가 시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프로그램을 보니 a단조로 적혀 있었다. 시작된 곡은 17번 중 네번째 곡인 a단조였다. 이 곡은 스필만의 1948년 녹음으로만 정말 여러 번 들었고 그래서 임동혁의 해석이 전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졌다. 그와중에 앞에서 까닥대는 여자애 머리 만지는 사람 기침 소리 기침 소리 정말이지 곡이 시작되기 전에 곡 중간에 곡이 끝나자마자 곡이 끝나고 나서 내내 기침 소리. 서주가 반복되며 끝나는 부분에서는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낮은 불로 끓어오르는 혐오. 마주르카 c#단조는 쉽고 아름다웠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곡에서 '미묘한 표정이 엿보인다'고 쓰고 있다. 폴로네이즈 판타지는 어려웠는데 몇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모든 부분을 차차 익히게 될 그런 작품일 것이다.

마지막 곡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7번이었다. 말하자면 내 취향은 아니지만 1악장의 내려치는 빠른 리듬과 불협화음이 선명한 음색으로 들리는 것은 아주 간결하고 아름다웠다. 신형철의 《이별의 능력》 해설에서 표현을 빌려서, 라벨의 표제음악이 '리얼한 것을 직접적으로 현시하려는 욕망'이라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곡은 '표면의 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서정적인 선율에서 벗어나 '시뮬라크르를 긍정함으로써 잠재적인 세계를 가동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3악장의 조성 변화와 속도도 좋았다.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2악장도 생각났고 앵콜은 어떤 곡이든 쇼팽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박수 끝에 시작된 곡은 슈베르트 즉흥곡 D.899 3번이었다. 좋아하는 곡이어서 기뻤다. 두번째 앵콜곡은 그 지겨운 D.899 2번이었다. 어쨌든 임동혁의 슈베르트 연주는 시원시원했고 직접 들으니 좋았다.

음악회에서 마지막에 공연자가 인사를 하고 나갔다가 들어오고 청중이 박수의 크기를 바꾸는 식의 눈치와 긴장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두번째 앵콜이 끝나고 다시 박수가 높아져서 세번째 앵콜을 하게 됐다. 웃음이 지나가고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치기 시작한 곡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물속에 잠기는 건 도시 뿐인가? 음악당에 바닥부터 물이 차면 가장 저지대에 있는 그랜드피아노의 바퀴가 잠기고 점차 임동혁이 잠기겠지. 물 높이가 손을 넘었을 때 음악은 고요해지고. 두번째 듣는 곡인데 꼭 끝까지 들어야 되겠어? 3층의 청중석까지 물이 차면 사람들은 모두 부력 때문에 자리에서 조금씩 뜨고 탁한 물 사이로 기포가 조금씩 오르겠지. 고요할 때에도 음악은 있는 게 아냐? 살아남은 아저씨 두 명이 나오는 길에 얘기했다. "애가 예뻐." "귀엽지 눈웃음 치고." "동민이도 왔어 내 옆에 앉았어." 음악은 지나가고 연주회는 끝난다.



by 새벽 | 2010/02/28 02:27 |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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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혼란스러울 때는 공부를.. at 2010/03/02 14:17

제목 : 임동혁콘서트(20100227)와 관련된 블로그글들
토요일날 예술의 전당 임동혁 공연은 참 좋았다.너무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껴지게 해주는..공연 내내 나는 예술의 전당이 아니라따뜻한 밤공기가 가득한 초원의 부드러운 풀밭위에 누워서달도 보고 별도 보고 누군가의 팔베개도 하는 느낌을 받았다.인터미션시간에 나와서 와인 한잔을 하려고 줄을 섰는데,내 뒤의남자 아이 둘이지난번 기말고사기간에임동혁실황중...more

Commented by 서울러 at 2010/03/01 11:43
안녕하세요 새벽님 링크타고 떠다니다 들르게 되었는데, 클래식에 관한 포스팅이 흥미로와 주기적으로 들러 클래식에 관한 포스팅을 읽고가는 나그네입니다.
저도 근래에 라벨의 거울을 듣게되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 앨범을 하나 구매해서 듣고싶습니다만, 클래식의 세계는 너무 광대하여 앨범하나 구매하는것도 움찔움찔거리게 되더라구요. 거울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밤의 가스파르가 담긴 앨범을 구하고싶은데, 혹시 좋은 앨범이 있으면 추천 가능하실런지요?
Commented by 새벽 at 2010/03/02 22:13
헉 반갑습니다 기뻐요..
클래식에 관해 쓰는 대로 쓰면서 광대한 세계에서 영 멀지는 않길 바라지만 잘 모른다는 느낌뿐이예요. 씨디를 많이 살 형편도 못 되고 앨범 정보는 일부러 잘 안 찾아보기도 해요;; 연주회에 가기 전에 파반느와 밤의 가스파르는 고클래식에서 파일을 받아서 들었었어요. 파반느는 기제킹, 밤의 가스파르는 아르헤리치 연주를 계속 듣고 있는데 아직 추천할 만큼 익숙하게 듣지는 못했네요. 어떤 앨범을 살지 아직 망설이고 있습니다 ㅡㅜ
Commented by 촉촉핸드 at 2010/03/01 13:46
저도 블로그에 퍼 갑니다. 콘서트가 너무 좋아서...느낌을 계속 되풀이하고 싶네요.
Commented by 새벽 at 2010/03/02 22:18
안녕하세요. 링크해두신 다른 글을 보고 두번째 파반느를 칠 때 연주자가 울었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Commented by 나인테인 at 2010/03/03 21:57
난 중앙일보 본사건물 옆 호암관의 2층에 가봤지만 꽤 높던데 3층이라니 전지적 작가시점이었겠네ㅋㅋ 앵콜 적당히 시키지 아무리 정착된 문화라지만 나중엔 4번 5번 시킬 기세.. 앵콜 이후의 그 특유의 박수치는 긴장은 뭔가 눈치싸움 같아 오히려 즐기는 마음으로 막 치게됨 ㅋㅋ
Commented by 새벽 at 2010/03/03 23:33
반응이 좋은 경우에는 세 곡 네 곡씩 앵콜을 하는 일이 아주 드물지는 않은 것 같아요. 눈치와 긴장이 싫을 때는 내가 보기엔 공연이 썩 훌륭하진 않았는데 인사나 박수가 길어질 때인듯.
Commented by 새벽 at 2010/03/07 23:46
짐머만의 마주르카 c#단조 영상...http://www.youtube.com/watch?v=lNWJt4orp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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